그러니까, 어느 날 야자 끝나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 다녀왔-"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펼쳐진 광경은 평소에 집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암, 그라제잉, 그 돈 안 갚으면 니 눈탱이라도 팔아먹는 수밖에 없당께?"
"이번달에 월급이 체납돼서...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이고, 아이고, 여기 거지분 납셨네잉. 불쌍해서 어쩌나. 밟아."
"예!"
말 한 마디에 옆의 각목 든 남자가 어머니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는 밟아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그러니까, (퍽!) 갚으랄 때 좀, (퍽!) 갚았으면, (퍽!) 우리도, (퍽!) 이 고생, (퍽!) 안 해도 되잖아! (퍽!) 이 창년아! (퍽! 우드득!)"
마지막으로 때릴 때는 왠지 어머니의 뼈가 부러진 것도 같았다.
"때리는 걸로 되는 거라면 차라리 저를 대신 때리십시오!"
아버지는 필사의 노력을 다해 어머니를 때리는 깡패를 막아 보려고 애썼다.
"니새끼는 저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임마!"
'퍽!'
"아아악! 으아악!"
그 말에 깡패는 발로 아버지의 낭심을 차서 넘어뜨려버렸다. 이런 광경은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깡패가 사라지고 나면 없는 지식을 동원해서 응급처치를 하든가 심할 때는 119를 부르든가 했고, 항상 돈 없고 힘 없는 내 처지를 원망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저들이 우리 집에 나타날 때마다 내 마음은 분노로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깡패들에게 화는 났지만, 왠지 드는 생각이 무차별적인 증오가 아니라 냉정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갔고, 깡패의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내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그리고 나서 '필름이 끊어졌다'고 해야 하나?
 * * * * *
잠시 후, 깡패와 사채업자 둘 모두 죽어 있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유 때문에 헉헉거렸다. 죽은 이들의 시체를 확인해 보니, 복부는 뻥 뚫려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몇 개의 그을린 선이 나 있었다. 원수가 죽어서 기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저지른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거나 화가 나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눈물이 났다.
"아이고, 아들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니, 응, 아이고......"
어머니께서는 어째서인지 이제 나를 붙잡고 울고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쇼크로 기절하신 모양이다.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나는 일단 경찰에 전화를 해 보았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네, 여기 사람이 죽었는데요,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서울시 xx구 oo동 어디입니다. 네. 빨리 와주세요."
지구대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경찰이 오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사람을 죽였어,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께서는 경찰이 오건 말건 이렇게 계속 통곡을 하고 계셨다. 잠깐, '우리 아들이 사람을 죽였어'? 깡패와 사채업자를 죽인 것이 그러니까 나라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그 둘의 배에 관통상을 낼 수 있는 힘도 없었고, 그리고 그을린 듯한 상처를 낼 수 있는 도구는 사채를 빌어 쓸 정도로 가난한 우리 집에는 없었다.
"아주머니,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청취를,"
"이놈이 사람을 죽였어, 으흐흐흐흐흑,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께서 이성을 잃으시고 계속 이런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나는 당연히 용의자로서 잡혀갔다.
"당신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 * * * *
나는 지금 수감된 상태이다. 같은 방에는 불량학생도 보이는 듯했고, 예의 '내가 죽였다고 의심되는' 그 깡패와 판박이로 보이는 하류인생을 사는 것으로 보이는 우람한 사람도 있었고, 의외로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전혀 모를 것 같은 사람도 많았다. 물론 나를 내가 평가한다면 제일 후자에 들어가겠지만, 어머니는 분명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셨다. 이것이 어쩌면 정신분열증 같은 것인가? 다중인격? 그러고보니까 다중인격이 발현될 때는 본 인격은 정신을 잃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3822번, 면회!"
간수가 문을 열고 나를 끌고 나간다. 아버지는 기절해 있고, 어머니는 저렇게 실성한 상태이니 절대로 면회를 오실 분이 아니다. 대체 누가 면회를 온 것일까? 정신과 의사? 학교 선생님? 아니면, 설마? 이런 의문을 품은 채로 간수가 끌고 가는 데 따라서 그저 움직일 뿐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곳에는 뜻밖에도 정장을 차려입은 생면부지의 남성이었다.
"죄수번호 3822번 김철수."
"간수도 아닌데 저를 그렇게 부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묻고 싶습니다만."
"허허, 풀어주러 왔는데 이렇게 까칠하게 나오면 듣는 내 쪽이 기분나쁘지."
여기서 솔직히 내 생각을 풀어놓자면 애시당초에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를 죄수번호로 호칭하는 것 자체가 기분나쁘다.
"어차피 풀어주셔도 부모님은 저를 미친 놈으로 치부하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조금은 날 선 얘기를 꺼냈다. 물론 나는 부모님께서 그러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매우 간절히.
"그런가? 차라리 잘됐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와는 최소 삼 년에서 길면 십 년 넘게 떨어져 있어야 할테니까."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 현장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봐. 어땠는지."
"기억같은거 안 난다고요! 난 단지 걸어갔을 뿐인데 필름 끊기고 정신 차려보니까 사람 둘이 죽어있었어!"
"누가 죽인 거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귀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도 될지도 모르죠."
사실 나의 다중인격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지만 일단 그걸 말하면 약점을 잡히는 것이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귀신이라고? 하하하하하하!"
남자가 갑자기 크게 웃어댔다.
"우리가 조사한 결과 사인은 빔병기였다. 국방연구원에서도 아직 실용화하지 못한 기술이지. 그런 무기를 귀신이 끌어쓴다고? 아니지. 조금만 더 잘 생각을 해 봐. 아주 잘 되살려 보라고."
억지로라도 그 떄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나는 사채업자를 향해 걸었다. 그 뒤 필름이 끊기고 사채업자와 깡패가 죽었다. 걸었고, 그 뒤에 시체가 남았다. 이 이상 떠오르지 않지만 억지로 떠올려보려고 시도했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어느 정도의 '기억', 아니 차라리 '관찰 영상'이 떠올랐다. 손목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검 같은 것으로 그들을 찌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또 하나의 단편은 내가 "쓰레기는 죽어버려"라고 나직하게 말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조그만 기억 속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아악!"
너무 머리가 아파서 이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자네 같은 유형은 아직 본 적이 없네. 보통은 우리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데려가면 그 후에 각성하지. 각성하고 나서 본래 인격과 그렇게 차이를 보인 적도 지금까지는 없었어."
아니 이게 무슨 만화에서나 볼 법한 말인가? 능력? 각성? 나오는 말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됐건 자네도 그들과 똑같은 능력자라는 것은 사실이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지금 상황을 볼 때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위험해지겠지."
도박을 해 보자.
"거절한다면?"
"감방에서 평생 썩거나 못해도 사람 죽였다고 빨간줄 쳐지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게. 만약 따라오지 않을 거라면 변호사는 없으니."
...완전히 딜러가 유리한 게임이군.
"그러고보니까 채지윤 피닉스가 자꾸 네 이름을 부르던데 말이지, 음."
아무래도 이 카지노는 딜러가 스나이핑까지 할 수 있는 거 같다.
"지윤이가 특목고를 가서 없어진 거라더니 거기로 간 거였습니까?"
"뭐, 어떻게 보면 '특목고'라는 말도 반쯤은 맞긴 하겠지만 말이야."
젠장.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따라가겠습니다."
생각과 달리 말은 이미 이렇게 나와버렸다.


 
...무언가 졸작을 써버린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애쉬군입니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을 연펑내고(...) 세계관만 짜고 폐기한 것이 여러개에, 단편만 쓰는 라이프도 그나마 한 번 때려치고 난 후, 어떻게든 심기일전해서 다시 라노베 스타일로 써보자 합니다. 졸작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최소한 연재간격이 느려지더라도 연펑은 안 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ㅠㅠ
추신. "내 안의 나"는 가제입니다.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어요 ㅠㅠ) 만약 더 좋은 제목이 생각난다면 전작들까지 죄다 그 제목으로 바뀔 것입니다.
Posted by 애쉬군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k.leo.re.kr BlogIcon 레오 2012.02.18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굵직한 스토리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부담스럽고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본다)

    덧 : 링크 사이드바에 제 블로그 주소 빼주세요. ;ㅁ; (...)